그럼에도 피우는 이유: 담배의 진짜 이야기
5편: 간접흡연 — 심각성의 실체
“내 몸이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러나 담배 연기는 흡연자만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단순한 '옆 사람의 담배 연기'가 아니다.
실제로 담배 연기의 85% 이상은 피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이 들이마신다.
흡연은 개인의 기호로 포장된 채, 비흡연자의 신체를 점유하는 행위다.

간접흡연의 독성 — 정제되지 않은 ‘초미립자 폭탄’
담배에서 발생하는 연기는 크게 두 가지다. 흡연자가 들이마신 후 내뱉는 주류 연기(Mainstream smoke), 그리고 담배 끝에서 자연 연소되는 부류 연기(Side-stream smoke). 문제는 부류 연기가 필터를 거치지 않아 유해 성분이 더 많다는 점이다. 간접흡연자는 이 두 연기를 동시에 들이마시게 된다. 이는 단순히 불쾌한 냄새 정도가 아니라, 화학적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부류 연기 속에서 다음을 검출했다.
- 벤조피렌: 1급 발암물질, 타르 생성 원인
- 암모니아, 포름알데하이드: 호흡기 자극, 독성 연무
- 초미세먼지(PM1.0 이하): 폐포 깊숙이 침투하여 폐포 내 염증 유발 및 DNA 손상 가능성
-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장기 흡입 시 신경계 손상과 내분비 교란 가능성
간접흡연의 피해는 누구에게 더 치명적인가?
아이와 청소년
폐 기능 미성숙 상태에서 연기에 노출되면 성장이 지연되거나 기관지염, 천식 악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어린 시절에 담배 냄새에 익숙해지는 경험이 흡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춘다. 부모가 흡연자인 가정의 자녀는 비흡연 가정보다 2~4배 높은 흡연 시도율을 보인다.
임산부와 태아
간접흡연에 노출된 임산부는 저체중아, 조산, 유산 확률이 증가하며, 태아의 폐 형성과 신경계 발달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노약자 및 기저질환자
만성 호흡기 질환, 심장병 환자에게 간접흡연은 직접 흡연만큼 위험하며, 특히 고령자에게는 심혈관계 발작 유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간접흡연 피해는 특정 인구집단에 구조적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실내 간접흡연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사람은 아이도 아니고 임산부도, 고령자도 아니다.
일반 가정의 비흡연 여성, 특히 고학력·중산층 이하의 전업주부들이 간접흡연 노출률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은 저소득층 남성 노동자와 다세대 주택 거주자가 뒤를 잇는다.
이 현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아직도 가정 내에서의 실내 흡연이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가부장적 문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소형 평수가 대다수인 저소득층에서, 공간 자체의 분리가 어려운 주거 구조와 열악한 환기 조건, 그리고 법적 규제가 미치지 않는 비공식적 생활 공간에서의 무방비한 노출 등도 큰 영향을 미친다.
즉, 간접흡연은 단순히 흡연자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위험을 집중시키는 환경적 폭력이다.
삼차흡연(Third-Hand Smoke): 잔재가 남기는 위험
"창문 열고 피웠어요”, “욕실에서 피웠는데요?!”
대부분 흡연자들이 이렇게 변명한다. 하지만 간접흡연의 실질적 위협은 ‘지금 내뿜는 연기’만이 아니다. 더 문제는, 그 연기가 사라진 후에도 수 시간에서 수 일간 남아 있는 잔재들이다.
- 실내에서 한 개비를 피우면, 공기 중 미세먼지(PM2.5) 농도는 WHO 기준치의 10배 이상이 된다.
- 담배 연기 속 유해 입자는 공기 중 최대 2~3시간까지 부유하며, 특히 니코틴은 표면에 흡착되어, 실내 오존이나 질산과 반응하여 새로운 발암성 니트로사민(NNA, NNK)을 생성한다.
- 이 유해 물질들은 벽지, 가구, 커튼, 아기 장난감, 피부, 머리카락, 옷 등에 남아, ‘삼차흡연(third-hand smoke)’ 형태로 다시 호흡기로 유입된다.
- 특히 아기나 반려동물은 이런 표면을 입에 대거나 피부로 직접 접촉하는 행동으로 담배 성분에 노출될 위험이 매우 높다.
간접흡연은 단순한 공기 오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공간에 축적되는 화학적 유해 물질이다. ‘삼차흡연’은 후각적 감지로는 사라졌지만, 호흡기와 면역계를 계속 자극한다.
공공장소에서의 간접흡연 — 제도의 한계
한국은 법적으로 공공시설, 음식점, 학교, 병원, 대중교통 등에서의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현실은 여전히 회색지대다. 현행 금연 정책은 흡연 구역을 나누는 식의 ‘회피 설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흡연자에게 회피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일 뿐이다.
- 건물 출입구, 주차장, 엘리베이터 대기 구역, 버스 정류장, 골목 등 반공적 공간은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로 방치된다.
- 전자담배는 냄새가 덜하다는 이유로 실내 흡연 규제의 회피 수단이 되고 있다.
- 법적 금지구역이 아닌 경우,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구제 절차나 권리 보호 장치가 사실상 없다.
"흡연자는 선택하지만, 비흡연자는 회피해야 한다"는 이 구조는 과연 정당한가?
간접흡연은 이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정책과 인권의 문제다. 타인의 건강권뿐 아니라, 미성년자에게 흡연을 정상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건강의 문제에서 나아가, 사회 전체의 신뢰와 안전 문제로 확대된다.
흡연은 선택일 수 있는가?
담배는 필터로 걸러진다. 하지만 그 연기는 타인의 몸과 삶을 거르지 않은 채 통과한다. 그 누구도 숨을 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 다음 편에서는, 흡연의 새로운 국면, 전자담배라는 '대체제'의 실체를 파헤칩니다. 전자담배는 정말 더 안전할까요?
6편: 흡연의 진화 — 전자담배의 명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