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피우는 이유: 담배의 진짜 이야기
7편: 전자담배의 해부 — 기기별 유해성과 위험도
"덜 해로운 담배"인줄 알았는데...!
전자담배는 하나의 제품군이 아니다.
그 안에는 흡입 구조, 온도, 니코틴 형태, 액상 구성, 사용 방식 등에서 각기 특성을 지닌 다양한 기기군이 존재한다.
그만큼, 건강에 미치는 위험과 노출 수준도 기기마다 극명하게 다르다.
이 글에서는 전자담배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고, 각각의 기기에서 어떻게 독성이 발생하고, 어떻게 어린 비흡연자를 유혹하는지, 그 제품별 명암을 들여다본다.

액상형 전자담배 — 향으로 유혹하고, 온도로 중독시킨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쥴(JUUL), 릴 베이퍼, 칼리번 등으로 대표된다.
기기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니코틴 염이 포함된 액상을 프로필렌글리콜(PG) 또는 식물성 글리세린(VG)에 녹인 후, 전기 코일로 가열하여 기화된 입자를 흡입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가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해물질이다. 대부분의 제품이 작동하는 온도인 220-240도에서는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와 같은 자극성 물질이 발생하며, 온도가 250도를 넘기면 벤젠, 아크롤레인 같은 발암 가능성 물질과 함께, 코일 재질에 따라 크롬·니켈 등의 중금속 입자까지 검출될 수 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동일한 액상이라도 10도만 가열 온도가 높아지면, 발암물질 농도가 5-8배까지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온도를 사용자가 직접 확인하거나 조절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청소년에게 이 기기는 특히 위험하다. 향이 다양하고 흡입감이 순해 진입 장벽이 낮으며, 쥴처럼 USB 형태로 설계된 제품은 학교나 가정에서도 들키기 어려운 디자인적 익명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청소년 흡연의 진입 경로를 더욱 넓히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JUUL, 릴 베이퍼 — 닮은 듯 다른 ‘닉솔’ 액상형 기기
미국에서 시작된 JUUL은 니코틴 염(Nicotine Salt)을 활용해 빠르게 중독성을 높인 대표 제품이다. 릴 베이퍼나 칼리번과 같은 국내 유사 제품들도 ‘팟’ 교체형 액상 카트리지를 사용하는데, 특히 JUUL은 흡입 시 자극이 적고 향이 강해 청소년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 나갔다. 하지만 온도가 25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포름알데히드나 벤젠 같은 발암물질이 검출되며, 팟 내부의 금속 재질(열선이나 니크롬 구조)에서 중금속 이온이 녹아 나오는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다.
JUUL은 이미 미국 FDA에서 일부 제품 판매가 금지된 상태이며, 릴 베이퍼 역시 고농도 액상 니코틴으로 인한 급성 중독 사례가 의료 보고서에 등장하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 — 연초보다 ‘덜 해로운 듯’ 설계된 착시
궐련형 전자담배는 아이코스(IQOS), 글로(Glo), 릴 하이브리드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잎담배를 연소가 아닌 고온 가열 방식(약 250~350도)으로 태우지 않고 데우는 방식이다. 겉보기에 연기가 거의 나지 않고 냄새도 덜해, 전통 담배보다 안전하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일부 유해 성분—특히 타르와 일산화탄소는 기존 궐련보다 50~90%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하지만 폴리아로마틱 탄화수소(PAHs),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벤조피렌 같은 발암물질은 여전히 잔존하며, 일부 제품은 흡입 시 니코틴 농도가 연초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 제품들은 청소년보다는 기존 흡연자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며, “덜 해로운 담배”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오히려 금연 의지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 중 다수는 기존 연초와 병행 사용하고 있으며, 금연이 아닌 흡연 유지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코스(IQOS), 글로(Glo) — 연초와 전자담배의 경계에 선 가열형 기기
아이코스는 실제 잎담배를 짧은 막대 형태로 가공하고, 히터를 이용해 연소가 아닌 ‘가열’로 니코틴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글로는 조금 더 고온에서 가열되며, 둘 다 타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담배 고형물 속에 미량의 발암물질이 존재한다. 특히 폴리아로마틱 탄화수소(PAHs), 니트로사민, 벤조피렌 등의 화학물질이 검출되었으며,
일산화탄소는 연초보다 낮지만 니코틴 농도는 오히려 더 높을 수 있다. 아이코스를 흡입한 직후 소변에서 니코틴 대사물질이 급격히 증가한 연구도 있으며, 간접흡연의 피해 역시 존재한다. 특히 밀폐된 실내에서 가열형 담배 연무는 입자 크기가 작고 깊숙이 침투하는 특징이 있어 폐포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일회용 전자담배 — 가장 빠르고 가장 위험하게 퍼진 담배
일회용 전자담배는 락텐(LOKTEN), 멜릭(MELIQ), 엘프바(ELFBAR) 같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빠르게 유통되며, 액상과 배터리가 일체형으로 구성되어 충전이나 리필 없이 일정 흡입 횟수 사용 후 바로 폐기하는 방식이다. 편의성과 휴대성, 가격 접근성 덕분에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퍼진 제품군이 되었다.
일회용 전자담배의 유해성은 제대로 검증된 바 없다. 제품에 표기된 니코틴 농도보다 실제 농도가 2~3배 높은 경우도 많으며, 저가형 배터리 사용으로 인해 가열 부위에서 중금속 성분이 함께 흡입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잔여 액상이 남은 채로 무분별하게 폐기되며, 환경오염이나 어린이의 오용 위험도 경고되고 있다.
이 제품들은 SNS나 중고거래 앱, 소규모 상점 등을 통해 불법적이고 은밀하게 청소년에게 유통되며, 흡연이 아니라 소비와 놀이의 형태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운 흡입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엘프바(ELFBAR), 락텐, 멜릭 — 맛으로 유혹하는 일회용 전자담배
최근 가장 빠르게 퍼지고 있는 일회용 전자담배는 ‘맛있는 담배’로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대표적인 제품인 엘프바(ELFBAR)는 국내 편의점은 물론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달콤한 과일향, 디저트향 등 수십 가지 향료가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 제품들의 표기된 니코틴 농도보다 실제 함량이 훨씬 높을 수 있으며, 불법 유통 제품 상당수가 정량 검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락텐은 배터리와 카트리지가 일체형이라 충전도 리필도 되지 않아 사용 후 바로 버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배터리 폭발 사고나 환경오염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층에서는 이 제품이 ‘간편하고 티 안 나게 피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실내, 학교, 화장실에서의 은밀한 흡연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중독 초기 단계에서 자각 없이 빠지는 구조적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 CDC는 전자담배에서 발생하는 유해 성분의 70%가 기기 과열 상태에서 발생하는 증기 내 화학반응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300도 이상의 고온에서는 향료 성분이 디아세틸,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로 변형되며, 이중 일부는 ‘팝콘 폐’(기질성 세기관지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선호 기기와 중독 경로
2023년 한국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전자담배 사용자 중 약 76%가 ‘일회용’ 제품을 선호하며, 처음 흡연을 시작할 때 ‘과일맛’, ‘디자인’, ‘냄새 없음’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는 곧 기기의 유해성보다는 접근성과 감각적 기호성이 중독의 핵심 요인임을 잘 보여준다. 즉, 브랜드가 설계한 향과 사용 방식 자체가 중독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 다음 편에서는 흡연이 신체에 어떤 순서로,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파헤친다. 뇌는 어떻게 중독 회로로 재배선되고, 심장은 어떤 방식으로 부담을 받고, 혈관은 왜 조용히 좁아지고 터지는 걸까? 〈8편: 흡연의 해부 — 뇌, 심장, 혈관이 먼저 망가진다〉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