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사는 법 3 – 혹시 아시안 플러시세요?

직장 상사나 사촌 매형은 얼굴 뻘게지는 것을 혈액순환이 좋은 증거라고 한다. 술 못 마신다고 버텨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는다고 자꾸 권한다. 심지어 의대 교수들도 소주 한두 잔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고 신문 방송에까지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인 30%에겐 전혀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국내 의학, 약학 교과서가 거의 북미와 유럽 책이라 이런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다.
2017년 1월 <한대신문> 강보승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아시안플러시

아시안 홍조 증후군은 일명 '아시안 플러시 신드롬(Asian Flush Syndrome)' 아시안 글로우(Asian Glow), 또는 알코올 불내증(Alcohol Intolerance)이라고도 불린다. 약 36%의 동아시아인(한국, 중국, 일본)은 소량의 음주에도 특징적인 생리 반응을 나타낸다. 얼굴 빨개짐, 메슥거림, 가슴 두근거림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열 명이 모여 회식을 한다면 그 중 세 사람은 술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는 아시안 플러시라는 것이다.
아시안 플러시는 알콜 대사의 독성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ALDH, 알데히드 탈수소효소)가 약해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과 피부가 '붉어지는(Flush)' 현상을 말한다. '플러시'라는 문구는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만든 용어로 보이는데 아마도 이민 온 아시아계 사람들의 신기한 신체 반응 때문에 명명됐을 듯하다. 그들 지역 사람들에게선 도통 본 적이 없는 현상이었을테니...
각종 문헌에 의하면, 그 중에서도 일본은 아시안 플러쉬가 40~45% 정도로 한중일 세 나라 중 제일 많다. 전 세계적으로는 8% 정도다. 서양인과 아프리카인은 드문 편이다.

이는 동아시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특정한 유전형질에서 선천적으로 알코올의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의 분해 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 원인이다. 일본인 40%, 중국인/대만인 30%, 한국인 26%의 비율로 나타난다. 약 7,000~10,000년 전에 중국 동남부 지역에서 ALDH2 활성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 분해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ALDH2 돌연변이는 우성인자로 작용하여 염색체 둘 중 한쪽에만 형질이 있어도 증상이 나타난다. 즉 부모 중 한쪽이 음주 시 안면 홍조 현상이 있으면 자녀에게도 이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보통 몸속으로 들어온 술은 알코올 분해효소(ADH)에 의해 알데히드라는 독극물로 바뀌어 분해된다. 그런데 아시아인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전체 인구의 약 35~40%는 서양인보다 이 해로운 물질을 처리하는 힘이 절반 이하로 약하며, 심지어 일부는 10분의 1 수준으로 낮을 수도 있다. 이들은 알코올 섭취 후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정상 효소를 보유한 사람의 6~7배 상승한다. 따라서 술을 아주 조금만 마셔도 ‘알데히드 독성 증상’을 경험한다.
이렇게 알데히드 분해효소 ALDH가 약한 사람에게는, 알코올이 1차적으로 분해된 독성 아세트알데히드가 혈액에 누적된다. 즉 비활성 ALDH가 있는 것이다. 이때 몸은 자동적으로 혈중 아세트알데히드의 농도를 낮추기 위해 혈관을 팽창시키게 되고 이것이 얼굴이 붉어지게 만들고, 몸이 힘들어지는 각종 숙취 증상으로 나타난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만취할 경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정상이지만 아시아 홍조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이라도, 그리고 매우 소량만 섭취한 경우에도 이것이 나타날 만큼 민감하다. 
그러나 얼굴이 빨개지는 것만이 알데히드 독성의 증거는 아니다. 붉게 변하는 것은 피부색 뿐만이 아니다. 알데히드는 알코올이 통과하는 구강과 식도, 간에서부터 혈류를 통해 전신에 퍼져 독성 작용을 나타낸다. 활성산소를 만들어 DNA와 각종 세포 속 소기관 및 주요 단백질을 변형시키고, 혈관 내에 히스타민(histamine)이라는 물질을 증가시켜서 피부를 붉고 가렵게 만들고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킨다. 두통, 속쓰림, 가려움, 피로감, 두드러기, 졸림, 가슴 쿵쾅거림, 메슥거림, 구토와 같은 증상들도 동반한다. 피부가 빨개지는 것은 알데히드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증거일 뿐이다.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들이 “좀 지나면 더 하얘져요!” 라고 가끔 항변하기도 하는데 이는 혈관이 강력하게 수축한다는 무서운 신호다.

맥주 한 캔도 못 비웠는데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이 유형이다. 이러한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 중 '술을 잘 마시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술을 반복해서 마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이런 증상이 있다면 절대로 술을 먹지 말아야 한다. 또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술을 권해서는 안된다. 

우리 조직문화에서 음주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아시안 플러시의 비율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음주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아시안 플러시임에도, 주량을 계속 늘려 주당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이 있지만, 건강에는 매우 좋지 않다. 오히려 계속 마시게 되면 점점 면역반응이 약해져서 조금 더 마실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암 발생률이 더욱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둔감해진 것은 술에 익숙해져서 술이 세진 게 아니라 의사들이 술에 대해 공통적으로 말하듯, 그만큼 몸이 망가져서 제 할일을 못하는 상태라는 반증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홍조 자체가 술의 독성을 분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결과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암과 간 질환 등 술과 관련된 질병은 이 증상이 있으면 위험도가 매우 높아진다. 이런 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술뿐만 아니라 흡연에도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코틴 분해능력과는 상관없이, 알코올 분해효소가 있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강암, 식도암, 후두암에 좀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담배에도 아세트알데히드 성분이 있고, 아세트알데히드 분해능력이 떨어지는 게 바로 아시안 플러시 신드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몸이 붉게 달아오르는 사람이 음주 후 흡연을 한다면 암 발병률이 수직상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참고 링크 >

이어서 보기<< 술로 사는 법 2 – 알코올의 분해술로 사는 법 4 – 숙취, 얼마나 알고 있나요? >>

댓글을 남겨주세요!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시면 소중하게 읽어보겠습니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