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흡연의 새 지도 — 전자담배는 어떻게 중심이 되어가는가

입에 불을 붙이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버튼을 누르고 숨을 들이마신다.
시장과 규제, 그리고 세대가 동시에 전환되는 지금,
우리는 ‘담배’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달라지는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2007년, '별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3년까지 사용률 1.1%에 불과하던 전자담배는 2020년에 3.2%, 2023년에는 8.1%까지 치솟았다. 특히, 질병관리청의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전자담배 사용률은 이미 10%를 넘어섰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흡연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의 전체 성인 흡연율은 여전히 20% 내외지만, 그 중에서 전자담배 사용자 비율은 약 3% 수준이다. 얼핏 적은 수치처럼 보이지만, 10년 만에 3배 가까이 상승한 수치이며, 특히 청소년의 경우, 2016년 이후 전자담배 사용률이 일반 담배 대비 빠른 증가세를 나타내면서, 10~20대에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즉, 전체 흡연자의 주류는 여전히 연초담배지만, 향후 10년 이내에 전자담배가 ‘흡연의 기본’이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처음에는 ‘금연 보조 수단’으로 소개되었지만, 이제 전자담배는 ‘금연보조기구’가 아니다. 사람들은 연초를 끊기 위해 전자담배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기호에 따라 번갈아 사용한다. 이는 니코틴 의존의 대상이 달라졌을 뿐, 금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자담배는 냄새가 덜 나고 디자인이 예쁘다!?”

전자담배는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입문 제품으로 포지셔닝되면서, 청소년과 청년층, 여성층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이들의 ‘기호’를 파고든 마케팅 전략과 기술의 진보를 무기로 새로운 흡연의 지도를 만들고 있다. 전자담배의 포장에는 건강 경고 문구가 적고, 사용법이 간편하며, 과일 향, 민트 향 등으로 중독 진입 장벽을 낮춘다. 이제 시장의 주도권을 쥔 것은 연초담배가 아닌, 연기 없는 니코틴의 설계자들이다.

이렇게 세를 확장해온 전자담배는 다양하게 진화한 만큼, 나날이 교묘해졌다. 연초담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와 기기별로, 완전히 다른 유해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을 전후해 JUUL, RELX, Myle, Logic 등 해외에서 시작된 프리필 카트리지(액상 카트리지 교체 방식) 기반의 전자담배가 국내에서도 유통되기 시작했고, 이후 2019년부터는 일회용형(팟형 포함), 리필형, 가열형 전자담배가 각각의 시장을 확보하며 확산되었다.

일회용 전자담배는 사용이 간편하고 가격도 낮아, 특히 10~20대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시장에서는 ‘이맛돌이’, ‘에이비윌’, ‘팟시스’ 등의 제품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1회용 팟 교체형 모델은 실질적인 니코틴 섭취량 조절이 어렵고, 지속적인 흡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리필형 전자담배는 액상 구매와 혼합의 자율성이 있는 대신, 불법적인 고농도 니코틴 액상 유통의 통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2021년 단속 당시에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수입액상 중 일부는 국내 허용치인 1ml당 20mg을 초과하는 사례가 다수 적발되었다.

가열형 전자담배는 '태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전하다는 인식을 주지만, 실제로는 고온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화학물질로 인해 암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아이코스(IQOS), 릴(lil), 글로(GLO) 등은 연초 기반이지만 연소 방식이 다르며, 흡입자의 습관에 따라 흡입량이나 유해물질 노출량이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전자담배는 브랜드와 형태에 따라 유해성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단일한 ‘안전한 대체제’일 수 없다. 소비자는 수많은 제품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 채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전자담배냐, 연초담배냐'를 묻기보다, 어떤 제품이, 어떤 경로로, 누구에게 더 해로운가를 따져야 한다. 전자담배의 세계는 복잡하며, 그 복잡함은 흡연의 새로운 위장이다.

시장도 이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KT&G의 릴(lil), PMI의 아이코스(IQOS), BAT의 글로(glo) 등 글로벌 담배 회사들은 더 이상 종이 담배만 팔지 않는다. 전자담배 라인업을 메인 브랜드로 설정하고, 젊은 감각의 마케팅을 동원해 전통적인 담배 시장의 쇠퇴를 상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전자담배를 단순한 보조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주력 담배 모델로 이동시키는 지도라 할 수 있다.

전자담배는 더 안전할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이제 기기별 전자담배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 다음 편에서는 연초담배보다 ‘낫다고’ 여겨졌던 전자담배의 종류별 유해성과 브랜드 특성을 낱낱이 분석한다. "12편: 전자담배 해부도 — 유형과 브랜드, 그리고 위험성"에서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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